[오픈이의 예배이야기] You are NOT SPECIAL!

Categories: 오픈워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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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편지의 반응이 실로 뜨거웠습니다.^^::

다른 칼럼과는 달리 대상이 “찬양인도자”에게 국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또한 공유해주셨습니다. 그 성원에 힘을 얻어 두 번째 편지를 띄우고자 합니다!!! ^^

 

 

 


2nd Letter;

당신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1. Stageship의 대한 끊임없는 경계심을 가지십시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이사야14:13]

 

이사야 14장은 사단에 대한 설명으로 유명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사단의 타락은 바로 자신을 스스로 높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찬양인도자는 항상 무대에 서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양인도자는 사람들보다 높은 자리에서 그들을 인도합니다.

이것은 단지 외적인 모습같지만 실제로 우리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사람들보다 높은 무대를 사모하게 되고, 교만함이 찾아옵니다.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착각이 사단이 주는 속임수이며, 유혹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로 달콤합니다. 찬양인도자는 자신을 쉽게 우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무대 위의 자신을 사랑하며, 사람들의 찬사가 자신의 존재의 이유가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은 이제 보기 좋은 커텐에 지나지 않고, 그 안에 사람들이 자신을 높여주기 원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허상일 뿐입니다. 이런 허상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2. 찬양인도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a part)이라[고린도전서 12:27]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고린도전서 12:22]

찬양인도자는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의 파트일 뿐입니다. 결코, 교회의 주역이거나 주인공이 아닙니다. 하지만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찬양인도자가 예배 안에서 영적 전쟁의 최전방에 서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을 우월감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큰 부담감과 씨름 앞에 놓여있는 것일 뿐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겐 은사가 부어집니다. 말씀의 은사, 구제나 섬김의 은사, 가르치는 은사 등등…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누구에게 더 부어졌는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심의 증거입니다. 우린 각자가 가진 은사로 교회를 섬깁니다. 그것이 찬양의 은사라면 찬양인도자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은사는 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이지, 나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3. 자신을 돌아보는 경건과 사역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겸손은 자신의 잘난 것을 부정하는 부정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성령 앞에서 적나라하게 조명하고 인정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지독히도 배우기 싫어하며, 언제나 교만해질 수 있는 죄인임을 주님 앞에서 인정해야 합니다. 매 순간 은혜를 구하는 것. 이것이 겸손입니다.

당신이 인정받는 찬양인도자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을 세우신 하나님께 매 순간 감사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감사는 겸손의 근거이고, 불평은 교만의 근거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개인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대 앞에서의 자신이 아닌 무대 뒤, 골방에서의 자신을 보십시오. 대부분 떳떳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질 때, 우린 그분의 임재 앞에 누구보다도 먼저 엎드릴 수 있는 은혜의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처럼 대부분의 예배를 찬양인도로 섬기고 있다면 회중으로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셔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예배자인지는 이때 드러나곤 합니다. 싱어나 PPT같은 역할을 감당해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예배 안에서는 보이지 않게 수고하는 수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늘 전면에서 찬양인도만 하다 보면 공감능력과 소통능력이 상실되기 쉽습니다. 당신이 한 찬양팀의 리더라면 정기적으로 찬양팀의 전면이 아닌 후면에도 참여하시기를 권고합니다.

 

 

4. 무대를 내어줄 용기 ; 무대는 미련의 장소가 아닙니다.

찬양인도에 욕심을 가질수록 사람을 세우는 것에 소홀해질 수 있습니다. 인도자의 자리를 내어주기가 싫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예배자는 하나님을 높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세웁니다. 그러한 마음은 인도자라는 타이틀이 결국 자신의 정체성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미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과감히 무대를 버리십시오. 재능있는 멤버들에게 과감하게 기회를 부여해주어야 합니다. 무대에 서는 시간이 줄어들 수도, 더 나아가 무대에 더 이상 설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버림받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관점 안에선 그렇게 해석될 여지도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우리가 무대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면 우린 이미 또 다른 종교 안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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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것은 결국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위의 씨름은 곧 저의 씨름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여전히 이것들과 싸우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20대 중반, 저는 모교회에서 청년부 회장이었습니다. 재적이 100명이었으니 꽤 큰 공동체였습니다. 회장이면서 찬양팀 세션이었고 싱어였습니다. 심지어 철야찬양단 리더이기도 했습니다. 무대는 저에게 익숙했습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관심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방학 때 다니기 시작한 새벽기도에서, 매일 목사님의 마이크를 설치하시는 한 권사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매일 그 시간 그 자리에 나와서 마이크를 설치하셨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목사님의 마이크를 설치하시는 권사님의 모습이 저의 영혼을 크게 울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분의 섬김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인도한 예배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모래성 같은 우쭐함이 한순간 무너졌습니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한 형제입니다. 우월감이 떠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열등감이 자리 잡습니다. 사람들을 이끌고 칭송받는 자리가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엔 깊은 열등감과 외로움이 함께 찾아옵니다. 우린 연예인들의 삶을 통해 지혜를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무대를 빼앗긴 삶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무대가 곧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린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다다라야 할 지점도 아니며 우리 자신도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부르신 부르심의 자리입니다. 부르심이 다한다면 짐을 싸고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집착이나 쟁취의 대상이 아닙니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누가복음14:10]

 

성경에서 ‘예배하다’라는 단어에는 ‘섬기다’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사람들은 무대를 추구하며 높은 자리에 앉기 원합니다. 예배자라면 이러한 시대정신과 인간의 죄성에 대항할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이 이 씨름에서 승리하기를 중보합니다. 무대에 서 있을 때에도 실상은 우리의 위치가 사람들을 섬기는 끝자리이길 소망해봅니다. 바로 그때 주님이 당신을 ‘벗이여’ 하고 부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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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오픈이의 예배이야기] 당신의 찬양인도가 언제나 직면할 부정적 피드백에 대해서

 

 

Author: 정 형빈

안녕하세요!! 오픈워십의 정형빈 간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