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예배하지 말입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의심스러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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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Photo_2016-03-15-12-34-25_85Author : 남서울대 윤주영

캠퍼스 안에서 한 사람의 예배자로,
캠퍼스 선교사로 살아가고 싶은 남서울대 탑리더 윤주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남서울대 12학번 윤주영입니다.
제가 군 생활 하면서 휴가 때마다 작성했던 군 소식지(군 기도편지)를 전역(16.1.27) 후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군대 안에서 제게 주신 마음들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소식지에서는 제가 군생활 하면서 ‘고난’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것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 하나님 계시죠

15년 9월쯤이었습니다. 국방부 소환에서 복귀한 수용자 1명이 재판에서 기각을 받고 복귀한 후 바로 변호사 전화를 신청하여 제가 전화 계호를 갔습니다. 그 수용자는 변호사와의 통화를 마치고 제게 말을 했습니다.

“주영씨.. 하나님.. 계시죠?”

저는 “네..”라고 짧게 대답하였고, 먼저 일어나 전화방을 나가는 그에게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사용신청서 작성을 마무리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수용자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에서 근무하다보면 이런 상황을 겪게 됩니다. 신앙을 가진 어떤 수용자는 재판에서 기각을 받고 돌아와 “신은 없어.”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재판에서 혼자 기각을 받고서는 교회에 한,두번 출석하지 않아 이유를 물어보니 “하나님께 반항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제 안에 들었던 고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 고민은 바로 ‘나에게 고난이 찾아오거나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것인가?’ 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데 욥기가 떠올라 무작정 읽었습니다. 욥에게 많은 고난이 찾아오는데 이 모습을 본 아내가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합니다. 그런 아내에게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과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내 삶이 평화롭고 안정 되어야만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고난이 다가와도 하나님은 여전히 계십니다.

 

 

 

 

# 고난=성장

수용동에서 근무를 서면서 친해진 간부 수용자 1명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신앙이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과 1대1로 대화할 시간이 생겼는데 그 분이 말하기를 ‘이곳에 오기 전에는 단순히 주일성수만 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와서 성경을 더 읽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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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계셔도 고난이 찾아오는 것은 알겠는데 ‘왜 고난이 오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겐 남아있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서 욥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말합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고통 받으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 나에게 찾아온 고난&예배

국군교도소는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사건이 터진 적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부대 사람들은 조사를 받고 좀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사건은 제가 분대장으로 있는 근무지에서 발생했는데 제가 다른 근무지에 있었을 때 발생한 사건이 제가 분대장이 되고서 터졌습니다. 저에게 있어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분대장이기에 1시간 정도 조사 받은 적도 있고, 분대원 1명이 징계를 받는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이버지식정보방에 가면 먼저 했던 것이 관련 기사 검색과 sns에 올라온 글과 댓글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겐 분대장으로의 무능력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후임들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 때 제 입에 항상 붙었던 말은 “주님..주님.. 어떡하죠?” 였습니다. 저에게도 고난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찬양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찬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찬양을 들으니 제 마음이 갑자기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찬양을 들을 때는 조용히 눈물 흘리기도 했고, 예배 시간에 찬양을 부르는데 마음이 편해지는걸 느껴 더 크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A photo by Ben White. unsplash.com/photos/iPyQg9QfepM

 

욥기를 읽으면서 고난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제 안에 풀리지 않는 것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배’였습니다. 욥에게 고난이 왔을 때 욥은 땅에 엎드려 예배했다고 성경에 쓰여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고난이 찾아왔을 때 하는 행동은 하나님께 ‘나의 상황이 이렇습니다.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기 보다, 입 밖으로 불평 불만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무엇이기에 욥은 고난 중에도 예배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제 안에 계속 던지고 있었습니다.

이 질문은 15년 3월부터 고난에 대해 생각하면서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기독교적 지식으로 ‘예배’를 정의 내리고 싶지 않았고 ‘예배’가 무엇인지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과 함께 계속 불렀던 찬양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유혹 시험이 내게 몰려올때에
나의 힘으론 그것들 모두 이길수 없네
거대한 폭풍 가운데 위축된 나의 영혼
어찌할 바를 몰라 헤메이고 있을 때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찬 세상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지금도 우리들을
실패와 절망으로 넘어뜨리려 하네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듯
믿음의 눈을 들면 보이는 분 계시네
지금도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사망과 어둠의 권세 물리치신 예수님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 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세상의 유혹과 시험이 내게 다가오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면서 말이죠. 그런데 요즘은 ‘예배’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처음에 든 생각을 ‘회복’이었습니다. 예배를 통해 내가 회복되는 시간임을 느껴서요. 그리고 회복 외에 더 크게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예배란 ‘나에게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라는걸 말입니다.

교도소에서 근무하고 수용자들과 같이 예배 시간을 가지면서 느꼈습니다. 수용자에게도 나에게도 고난의 시간을 보낼 때 예배란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 삶에 또 다른 고난이 와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내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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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군에서 예배하지 말입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

③ [군에서 예배하지 말입니다] 국군교도소에서 죄인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웁니다

⑤ [군에서 예배하지 말입니다] 그들은 수용복을 입은 죄인이고, 나는 전투복을 입은 죄인입니다

 

 

Author: YWAM CMK

그리스도의 청년들이 파도처럼 일어나 열방을 덮는 그날을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