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0150305 캠퍼스워십

Categories: 캠퍼스워십 리뷰

54

예배인도 : 조용일 간사
찬양인도 : 송지훈 간사
메시지 : 김재민 간사

 

 

예배 리뷰


길었던 겨울 방학이 끝나고 개강을 맞이했습니다. 개강 후 첫 예배라서 그런지 평소와 달리 약간의 긴장이 있었어요. 보통 내 스스로 무엇을 해낼려고 하면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다시 한번 내가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을 구하며 시작했습니다. 예배 시작할 때 항상 하는 기도가 있는데요. 바로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입니다. 바디매오가 했던 기도죠. 예배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구나 라고 느끼면서 저절로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첫 곡 임재는 원래 콘티에 없는 곡이었는데 예배인도자와 얘기하면서 이 곡으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정해놓은 콘티를 벗어나는 상황들이 종종 있는데 이럴 때 마다 주님이 어떻게 일하실까 더욱 기대가 됩니다.

기도할 때 주신 마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기쁨과 거룩함으로 주님을 구하고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보니 답은 신랑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랑을 사랑하지 않는 신부가 기쁨으로 신랑을 기다릴 수 없듯이 신랑을 사랑하는 신부는 기쁨과 거룩함으로 신랑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 살아가기 힘든 이유는 연약함과 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것에 대한 존 파이퍼 목사님의 예화가 생각납니다. 한 목사님에게 결혼을 앞둔 형제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곧 결혼하는데 난 아직 포르노를 끊지 못했다, 포르노 중독이다, 도와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대답은 중독치유센터에 들어가 상담을 받으라던지 포르노를 접할 수 있는 매체를 차단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신부를 더욱 사랑하라. 그것이 목사님의 조언이었습니다. 신부를 더 깊이 사랑하면 그것들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싸움도 이와 같습니다. 죄와 연약함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마음은 더 어려워 질것입니다. 그것에서 벗어나고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한다면 죄와 연약함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저도 주님을 사랑하는 거룩한 신부로 살고 싶습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싶습니다. 어제보다 더. 오늘보다 내일 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요.

 

 

콘티


  1. 하늘의 문을 여소서 (임재)
  2. 내 마음을 가득채운
  3. 나를 향한 주의 사랑
  4. 예수 예수 거룩한
  5. 거룩한 성전에 거하시며
  6. 적용 – I need you more
  7. 헌금 – 마라나타

 

 

메시지 –  김재민 간사


요한복음 17장 3절에는 영생을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 ‘안다’라고 할 때의 첫번째 의미는 지식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앎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알고 있지만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들어서 아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직접 서로 만나 서로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마치 이 청년처럼, 무엇을 더 해야만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영생을 얻는 것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성경의 텍스트를 읽는 행위, 또는 신학적 지식을 쌓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앎’은 하나님과 만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더 많이 만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하십니까?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삼상2:11-12)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삼상2:17)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삼상2:22)

 

엘리의 아들들은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기 시작했고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까지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사는 세대. 우리는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고려하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엘리의 이 두 아들처럼 살고 있습니까? 이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의식하고 고려하는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사무엘 - 하나님의 궤가 있는 곳에
엘리 - 그의 처소에 누워있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곳에 밤새도록 머물렀습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관계하며 알아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에게는 아이가 둘 있습니다. 한번은 첫째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들어왔는데 부모님과 눈도 못 마주치고 짜증만 내는 평상시와는 다른 행동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밤이 되자 아이가 엄마한테 와서 고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과 부모님의 약속은 놀이터에서 놀기로 하면 놀이터에서만 노는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가면 다른 곳으로 간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이는 친구가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문방구를 가자고 해서 그곳에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계속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아빠에게 안아 달라하고 뽀뽀하고 하던 아이가 약속을 어긴 것으로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이게 뭐 그렇게 큰 잘못입니까? 그런데 이거 하나로 관계가 어려워졌던 것입니다. 약속을 어긴 것 때문에. 이것을 이야기하고 부모가 용서하고 받아주기 시작할 때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약속을 어긴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질 지라도 다시 그분께 나아가기 시작할 때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

지금 이 세대는 하나님을 알아가기 힘든 세대입니다. 말씀 보는 것보다 공부하는게 중요하다, 취업 못하면 어떡하냐, 취업하고 해도 되잖아 라고 사단이 얼마나 속여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어도 신경쓰지 않는 세대. 몇 개월 동안 묵상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아도 갈급함이 없는 세대. 하나님께서는 이런 세대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내게 나오라! 우리의 삶의 소망은 예수그리스도이다.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나오는 영생, 그분의 뜻과 그분의 계획만이 우리의 길이다!

주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주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갈 수 있다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받으시며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시며 함께 하실 것입니다.

 

 

Author: 송 지훈

예수전도단 캠퍼스워십 송지훈간사입니다.

댓글 남기기